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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사는 데 있어,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택배가 도착하여 박스를 열기 전까지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여행지에 도착하기 전까지가 가장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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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시작은 지난 달에 L이 강릉에 관해 말을 꺼낸 것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기에 잊어버리고 있었다.
본가에 가서 심심해서 온 몸을 비틀고 있던 찰나, 바다를 보러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L에게 주차가 편리한 카페를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맛집까지 정리해 줬다.
카페에서 조각케익을 냠냠 먹는걸로도 충분하지만 성의를 봐서 코스에 넣기로 했다.
날씨가 맑은 날이 영어회화 수업이 있는 날이어서, 바다에 가기 위해 시간 조정을 하겠다고 했다. 선생님이 핫플레이스와 맛집을 추천해 줬다. 다만 L이 추천해 준 곳과 좀 떨어진 곳이라서 이번에는 가지 않고 그런 곳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만 해 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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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여행을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체력 안배이다.
십여년 전에는 지스타 보느라 용인에서 부산 당일치기, 빵을 먹겠다고 대전 당일치기 같은 것들을 했지만 30대에 그런 계획을 잘못 실행했다간 기력이 다해서 중도에 리타이어해야 한다.
돌아올 때 졸음운전을 하지 않을 정도의 체력을 남겨 놓는 것이 1순위다.
왕복 410km / 5시간.
아점을 맛집에서 먹고, 카페에 주차를 하고 커피 마시며 놀다가 해변가를 좀 걸으면 되겠다.
여행 목적은 바다를 보는 것이므로 나머지 행위들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디저트 같은 것들이다.
핑크뮬리 공원이 주변에 있다는데 입장료를 받는다고 해서 굳이 가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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윰세를 볼 거니까 21시까지는 돌아오는 게 편할 것이고, 금요일 저녁에 정체될 것도 생각해야 한다.
돌아오면 주차할 자리가 없을 테니 큰 길에 주차해야 한다. 만약 토요일 오전에 주정차 위반 단속이 된다면 과태료를 물 것이다. 토요일 오전에 잠깐 나갔다가 주차할 자리가 날 만한 오후에 돌아오는 게 최선인데, 토요일 오전에 어디를 나갈 것이며 왜 또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것인가...
급 귀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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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요즘은 거의 들고 다니지 않아서 살짝 신경쓰이기도 하지만, 폰카와 카메라는 근본적으로 화질의 차이가 있고, 후보정의 가능성면을 보더라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들 결혼식이나 여행갈때만 가끔씩 쓰는 카메라, 이렇게라도 써야 본전 뽑는 것 아닌가 싶다.
카메라를 들고 가는 김에 귀찮아지지 않는다면 재료를 사서 토퍼를 만들어봐야겠다.
(토퍼라는 이름을 몰라서 팻말, 패널, 표지판, 사진 찍을 때 검은색 글씨 등등으로 검색했다.-_ㅜ)
날카로운 칼로 모서리를 깨끗하게 잘 따는 게 관건인데 문구용 칼로 잘 해낼 수 있을지 과연.
나는 내일 귀찮아지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