닿으면 사박사박 부스러질 것 같은 무미건조한 삶을 살다. 가끔씩 자의 또는 타의로 삶의 이벤트를 발동시킨다. 지금이 그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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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이 점점 줄어들어 급기야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체력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고 하루 종일 나른하고 밤에는 잠을 잘 수없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운동을 시작했다. 체력이 붙는 것이 느껴진다. 활동 대사량이 늘어났을 텐데 몸매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 신기하게도 배에 살이 복근 모양으로 붙어 있다! 이대로 근육돼지가 되는 건 아닐까? 운동 자체는 일부러 에너지를 소모시켜 몸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니 즐겁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운동을 배워서 몸을 좀 더 사용할 수 있게 되고, 할 줄 아는 운동이 많아지고 사용법을 아는 기구가 늘어나는 일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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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장소가 집 가까이 있으니 자주 다니기로 했다. 서브컬쳐는 꽤나 즐겼으나 대중예술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취미를 붙이는 것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오케스트라 공연을 다녀왔다. 휴대폰 불빛도, 벨소리도, 속삭임도, 악장과 악장 사이의 뜬금없는 박수도 없었다. 공연 감상 문화가 정말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다. 나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서로 다른 악기의 음을 분리하고, 화음을 분리하고 조각조각 내어 다시 이어붙였다. 가녀린 바이올린, 미끄러지는 첼로, 든든한 콘트라베이스, 애절한 오보에, 먹먹한 클라리넷, 경쾌한 플루트, 코끼리같은 바순, 동동거리는 북들과 캐스터네츠 소리까지. 아쉽게도 나는 비올라 소리를 구분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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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지출은 언제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보일러 온도조절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온도를 조절하는 다이얼을 한쪽 방향으로 돌렸을 때 설정온도가 일정하게 오르거나 내리지 않고 무작위로 지정된다. 다이얼 내부의 뭔가가 고장난 것 같은데 이 모델 온도조절기의 고질병이라고 하고, 제조사에서 단종되었고, 새로 교체하거나 수리를 하기에도 비용이 만만치 않다. 어쩔 수 없이 호환품을 구매하고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조그마한 기판 하나가 생각보다 많이 비싸다. 교체는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해 보이지만 벽에 있는 선을 제거하고 새 선으로 끼워넣는 일이라서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한다. 작업하다가 감전되면 안 되니 차단기를 내리고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돈을 모아서 전동드릴을 사려고 계획을 했었는데 녹록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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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아이패드를 폐기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민팃에서는 패드류는 받지 않고, 애플스토어에서도 매입하지 않는 오래 된 모델이라 스토어 방문의 실익이 없다. 그럼 폐가전 수거함에 버려야 하는데 큰 가전제품 말고 이런 적당한 크기의 물품들을 받는지 잘 모르겠다. 패드가 없으니 그림을 못 그려서 조금 아쉽다. 가끔씩 손이 심심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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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치가 좋고 커피가 맛있다는 커피집을 인스타에서 발견하고 방문했다. 사람이 가득 차서 많은 사람들이 대기목록에 이름을 올려두고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테이크아웃해서 공원 벤치에 앉아 쪼록쪼록 마셨다. 그럭저럭한 맛이다. 저렇게 줄을 설 일인지도 모르겠다.